*'선본'은 선거운동본부의 준말
내부선본발족식 이후 처음으로 선본원들이 모여 여성주의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 '교양'이라기 보다 수다방에 가까웠다. 지정된 사회자는 없었지만 관련 텍스트를 읽고나서 선본짱이 초반에 논해볼 지점들을 던져주고나서 알아서들 이야기를 나누었다. 논의가 산으로도 가고 바다로도 가서 좋은 구경 많이 했는데, 사실 이런 시간을 바라고 온 것이라 좋았다.
나는 어떤 사업을 기획할 때는 실무에 앞서 추상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와 함의를 만들어 가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가 초반에 단단하게 다져지지 않으면 나중에 실무고 뭐고 다 박살나기 쉬우니까. 다행히도 오늘 짧은 시간이지만(겨우 4시간 ㅠㅠ) 서로의 생각을 확인해 볼 수도 있었고 또 나의 이야기가 혹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어떤 지점에서 비판 받을 여지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어 오랜만에 가슴도 두근두근 떨리고, 시원하게 말도 해 볼 수 있었다. 다만 추상적인 부분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더라도 그 합의 수준은 구체적일수록 좋은데 오늘은 여러 요인으로 시간이 부족하여 조금 미진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을 하고도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못한 얘기들도 있었다. 아 정말 새벽까지 토론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몸이 안 좋아서 뒤풀이 못 간 것이 아쉽다. 블로그에 정리하면서 더 끄적여봐야지.
텍스트는 선본 컴티에도 올라와 있었던 '팀스포츠'에 대한 글이었다. (출처는 언니네트워크
www.unninet.co.kr 이거 다 쓰고 스크랩 해놔야지.) 팀스포츠는 흔히들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여성들끼리의 운동문화는 현실적으로 부재한 상황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여성들이 주인공인 다양한 팀스포츠를 대안적으로 사고하려는 시도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이런 글이 좋은 건 '자기 경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초중고 시절,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뭔지 모르게 불편했고,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낀,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을 개인적으로만 부담하려고 했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우리의 대화도 그렇게 시작했다.
남중, 남고, 여중, 여고, 공학중`고 시절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우리는 오로지 즐겁게 놀고 운동하지는 못했다. 뻥 뚫려있는 운동장 한복판에서도 불편한 적이 있었고, 끼고 싶은 적도 있었고, (의도적이든 않든)배제되기도 했고, 따로 놀기도 했고, 운동을 관심 밖으로 밀쳐 내버리기도 했고, 혹은 그런 친구들을 보아왔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은 완전히 개개인의 것으로 파편화 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엮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승패를 결정짓는 경쟁심리, 잘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타인의 시선 등등... 결정적으로 '내 공간'이 아니라고 느끼는 그 압!박!감!
관악사 운동장, 대운동장, 농구코트 ... 이 얼마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이름들인가. 하지만 결국 그 공간을 결정짓는 것은 부여된 명칭이 아닌 실제로 거기서 '누가', '무엇을' 하는가 이다. 현재 대운동장과 농구코트는 남성들이 전유하고 있다. 그럼 남성의 공간이다. (관악사 운동장은 허물어졌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운동을 한다. 그럼 거기는 남성이 운동하는 공간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누가 쓰지 말라고 했냐고, 같이 쓰자니깐? 열려있는 공간이잖아??? 하지만 그런 자유주의적인 관념만으로 그 공간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도 나오세요~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하라구요~ 백날 말해봤자 안 나오면 안 나오는 거고, 없으면 없는거다. 하나마나한 말이라는 것. 그렇다고 해서 '그럼 운동하고 싶어하는 여자들은 없나보네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남성들이 운동하고 싶어하는 만큼이나 여성들도 운동을 하고 싶어하고,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을 그리고 운동을 함으로써 맺어지는 네트워크를 원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단순하게는 운동을 같이 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운동을 같이 할 사람이 있더라도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공간 자체가 자기 공간이 아닌 것처럼 불편할 수 있다. 오랫동안 대학교 운동장에서 여성의 자리는 스탠드였다. (아까 말한 것처럼, 누가 스탠드 올라가라고 했냐고! 라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여성들을 억눌렀던 억압기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또 (단지 운동하는 '남성' 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운동'방식'이 주류이기 때문에 '그런 운동'을 하기 싫어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안적인 운동을 모색하면서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역시나 비주류고 아류라는 생각이 들어 낙심할 수도 있다. 여성들끼리 모여 뭔가를 따로 한다는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끼리 모여서 놀아봐야 그때 뿐이지. 어차피 밖으로 한발짝만 나가도 이전과 다를 바가 없는데' 라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다. 문제, 많다... 복잡하다...
대안적인 논의와 실천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간이 필요하다. 사회변혁을 꿈꾸는데 그거 자취방에 몇명이서 쑥떡공모한다고 이뤄지나? 거리로 나와야 하고 공간이 필요하다. 학생 자치를 이야기하는데 학생 자치공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여성의 대안적인 운동문화에 대해 논의를 하고 실천을 해보려면 운동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공간의 한복판에 들어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공간이 아닌 바로 그 공간이어야 한다. 단순히 '일정영역의 공토'만으로는 공간의 남성중심적 정치가 해결될 수 없다. 도피가 아닌 도전으로 바로 그 공간에서 쟁점을 만들어 내고 더 많은 논의를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 그렇게 사회대 학생회에서 2주에 한 번? 정도 대운동장을 예약한다고 치자. 그렇게만 한다고 사람이 모여들까? 재밌게 놀 수 있도록, 나가고 싶어지도록,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이를 위해 보다 학우들과 직접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를 갖는 과/반 학생회에 접촉하여 관심있어 할 법한, 혹은 평소에 운동을 하고 싶어했던 여학우들과의 연결도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어찌보면 부차적 문제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많은 정책, 기획, 사업들이 이런 문제로 실패한다. '그들만의 리그'로 보이는데, 그리고 나는 '그들'에 속해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리그'의 취지가 아무리 옳고, 좋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 운동방식에 대해서도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의 '주류' 팀스포츠인 축구나 농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포용하는 동시에 상대화 시켜야 한다. 대안적인 팀스포츠에 대해서는 우리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할 이들이 모여 논의해야 한다. 노는 것이 반, 준비하는 것이 반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시도가 있을 때야 비로소 기존의 주류 운동방식을 절대화하며 아류, 비주류로 기죽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운동방식을 긍정할 수 있다.
어찌보면 이러한 정책이 하나의 '온실'을 만드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온실 밖(현실 사회)으로 나가게 되면 다시 또 비실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일방적인 따뜻함만으로 보살펴주는 온실과 이런 시도를 똑같이 취급해버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는 이 속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고,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연대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내성과 면역력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낙관이나 어설픈 긍정이 아니라 많은 사업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는 사실이기에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1지금까지 나는 '옳으면 마땅히 참가해야지'의 논리에 많이 직면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옳더라도 참여하기 주저하게 만드는 맥락들이 분명 존재해왔다. 이를테면
지난 2월 용산참사 집회 때 구호를 외칠 때나 가두행진을 할 때나 왠지 모르게 내가 주체가 아니라는 느낌, 비민주적이라는 느낌은 이후의 내 태도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물론 소외감에 젖어있기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발전했지만.) '새로운(대안적) 관계맺음'은 기발한 정책을 내놓는다고 자동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 큰 문제부터 더 중요한 사안부터 끝내놓고 시도해봄직한 것도 아니다. 큰 문제가 끝나면 다른 큰 문제가 생기고, 중요한 사안이 해결되면 다른 중요한 사안이 등장할 것이다. 애초에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억압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콜론타이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그러나 노동계급의 본질적으로 중요한 임무들 중 하나에 관해 우리의 용서할 수 없는 무관심, 냉담의 기원은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는 집단적 노력을 요청하지 않고, ‘집안일’을 나중의 일로 미루는 것과 같은 성적 문제들에 대한 위선적 추방을 설명할 수 있는가? 마치 사회적 투쟁의 끊임없는 요소로써 성들간 관계들에 알맞은 도덕적 코드의 확립이 역사를 통틀어 관철,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결정적 사회 그룹의 제한들 내에서 성들간 관계들이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사회 계급들 사이 투쟁의 산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처럼!”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새로운 도덕과 노동 계급>(1918년)
콜론타이에 관한 포스팅 링크 :
http://blog.naver.com/nirvanahy?Redirect=Log&logNo=3370235
http://blog.naver.com/noh2y?Redirect=Log&logNo=10035503913http://blog.naver.com/2channie?Redirect=Log&logNo=27849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