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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의료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만드려면? Handwriting on Med

내가 대학시절 내내 가지고 있었던 화두는 
객체화, 대상화된 평범한 사람들을 주체로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대중을 오로지 주어진 서비스를 소비하는 존재로만 객체화 시킬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대상화는 뗄레야 뗼 수 없는 개념이다.
미학 강의에서 발터 벤야민을 배우며,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그저 자본주의적으로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
대중에게 잠재된 비판성과 주체성을 어떻게 끌어 올릴 것인가 벤야민이 던지는 화두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나는 인류학도로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대중을 주체화 하는 길이고, 
미적으로도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내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다큐멘터리 워크숍을 진행하고, 이주민 방송에서 미디어교육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서 나의 가설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이태원프리덤을 위시로 한 여러 패러디 창작물 (우리 학교에서는 총장실 프리덤)이 난립하고 흥행하는 것을 보면서
천재와 예술론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천재는 대중에게 모방할 만한 뛰어난 영감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순전히 내 관점에서…)
천재는 “형식”을 제공하고, 대중은 삶으로 “내용”을 채워넣는다.
예술을 생산해내는 천재만 주체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수많은 모방을 만들어내는 대중 또한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민요도 같은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뛰어나게 잘 부르는 사람이 선창을 하면 노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돌려부르며 노래를 풍성하게 만든다.
민요야말로 대중을 주체로 만드는 예술이 표방해야할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 학내 성평등 ucc에 “네모의 꿈” 과 “강의실 이데아” 라는 작품을 만들어 출품하게 되었다. 
두 작품 모두 성공의 기준은 “누구나 모방하고 싶고, 모방할 수 있는 작품” 이었다. 
네모의 꿈은 이정도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도록 분장을 위해 덮어 쓴 우체국 박스의 상표를 가리지도 않은 채 최대한 단순하게 촬영하였다. 
유튜브에 올라간 결과 주로 초등학생들에게 널리 보여진듯 한데, 학급에서 비슷한 작품을 따라만들고 댓글로 내용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등,
벤야민이 본다면 아주 흡족했을만한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강의실 이데아는 힙합, 랩이라는 장르를 탐구해본 결과이다.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이보다 적절한 형식이 없을 것 같았다. 
작곡 프로그램을 돌려 단순한 비트로 곡을 만들었고, 네 사람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 영화에 옴니버스 식으로 담았다. 
이것도 누군가 따라하기를 바랐지만, 힙합/랩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는 장르였고, 영화 안에서도 적절히 소화하지 못해 치명적이었다.
따라서 더 많은 이야기를 담긴 했지만 네모의 꿈에 비해 흥행하지는 못했다.

나는 이런 주제에 대해 진정성 있게 탐구하였다.
전문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의 발달에 따라 민주적으로 기술이 활용됨으로써, 
소수 전문가에게 독점되었던 기술이 대중을 통해 주체적으로 활용되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기술이 이런 과정을 겪어왔고, 의료기술 또한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료지식에 대해 대중이 접근하기 더욱 쉬워졌고,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갖기 원한다.

의사들은 이러한 현상들을 매우 피곤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결국 세상의 흐름이 이러하다.
의사들은 환자의 몸을 대상화 함으로써 가질 수 있었던 권력을 점차적으로 내려놓게 될 것이다. 
다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는 쪽에 설 것인가, 아니면 끝내 저지하고자 하는 쪽에 설 것인가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환자들, 혹은 건강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선택하려고 할 수록
전통적인 의사들의 권위와 입지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환자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더욱 바로 알도록 돕고,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도록 포지셔닝 한다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비록 전혀 다른 분야였지만) 이 문제를 진정성 있게 붙들고 나름의 시도와 실패를 반복해왔기 때문에 
의사로서도 이 문제를 다룬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암환자가 “무엇을 먹어야 몸에 더 좋을까요?” 라고 의사에게 묻는 질문 하나가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그 질문이야 말로 환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일련의 통제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해줄 수 있는 의사는 환자에게 자신의 몸의 통제력을 점차 돌려주게 될 것이고, 
나는 이것이 앞으로 의료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 기회가 된다면 메를로 퐁티의 책도 읽어보고 싶다.